위대한 다리

19세기 런던 템즈강에 걸쳐진 다리가 있었다. 이 다리는 매년 수많은 사람이 자살하는 이른바 '자살 다리'로 악명 높은 다리였다. 특히 이탈리아 최대 민간 은행이었던 '로베르토 칼빈'의 시신이 되어 매달린채 발견된 사건으로 유명하다. 자살률은 계속해서 높아졌고, 자살다리는 사회적으로 더 큰 문제로 확대되어 갔다. 1800년대 기사에도 그 당시의 상황이 아주 잘 나와 있으니 말이다. 그러자 영국 왕립 의과협회의 제안으로 원래 검정색이었던 다리 색을 초록색으로 칠하게 되었다. 그러자 놀랍게도 자살 빈도가 눈의 띄게 감소하였고, 결과적으로 30%나 줄어드는 성공적인 효과를 얻었다. 절망에 빠진 사람이 어둠의 끝판왕 검정색으로 칠해진 다리를 건넌다면 당연히 극단적인 상황이 일어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반대로 마음에 안정과 평안을 가져다 주고, 긍정적인 기운이 돌도록 만들어주는 초록색이 잠깐이지만 그들의 심리와 행동에 변화를 주지 않았을까? 물론 색이 그 사람의 상황을 바꿔줄 수 없고, 초록색 다리를 피해 다른 다리로 갔을 수도 있다. 하지만 다리를 건너는 그 순간만큼은 분명히 마음의 변화를 주었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초록의 시련

초록색은 안정과 휴식, 편안한 감정을 일으키는 색이다. 그리고 현대에 들어서는 기후와 환경 문제에 있어서 깨끗하고 자연 친화적인 느낌도 주기 때문에 '녹색'이라는 단어는 정말 많이 사용된다. 녹색 에너지, 녹색 경제, 녹색 요금제, 녹색 번호, 녹색당까지 모두 사람과 환경을 생각하는 올바른 이미지를 어필한다. 하지만 초록의 중심에는 '불안정성'이 자리잡고 있다. 원색적인 빨간 물감과 파랑 물감을 섞었을 때 나오는 2차색이라는 점과, 우리 눈이 인지할 수 있는 모든 색을 나타낸 색도도에서 가장 중심점에 자리하고 있는 것만 봐도 그렇다. 모든 방향으로 움직일 수 있고, 그렇기에 쉽게 변하고 바뀔 수 있는 색이다. 그래서 초록은 우연과 숙명, 행운과 불운, 행복과 불행을 상징하는 색이다. 사랑을 싹틔우는 봄의 색인 동시에, 미성숙의 쓴맛을 선사하는 색이다. 덜익은 과일은 모두 초록색인 것처럼 말이다. 초록색은 채도가 존재하는 그 어떤 색보다 중립적인 색이지만, 꽤나 모호하고 쉽게 변할 수 있다는 특징 때문에 부정적인 측면으로 인식이 기울게 되었다. 그래서 우리에게 불길하고 위험한 악령이나 용, 뱀, 괴물을 그릴 때 녹색을 칠하게 되었고, 조용히 죽음에 이르게 만드는 독을 표현할 때도 녹색이 주로 사용 되었다.

 

 

 

독기 가득한 색

실제로 녹색은 독을 품고있다.  1775년 스웨덴 화학자였던 카를 빌헬름 셸레에 의해 셀레그린이라는 안료가 발명되었다. 밝고 매력적인 초록색을 가진 이 안료는 큰 인기를 끌었고 양탄자나 양초, 직물, 디저트 등에 사용되었다. 특히 세련된 인테리어를 위해 벽지에 가장 많이 쓰이며 집 안에 정착하면서 함께 살아가게 되었다. 아름다운 색깔을 뽐내던 이 초록빛은 그렇게 조용히 사람들을 중독시켜갔다. 왜냐하면 셀레그린이 비소로 만들어졌기 때문이었다. 비소는 맹독성 금속으로 독성이 아주 강해 암과 더불어 여러 치명적인 질병을 유발할 수 있었다. 언제든 비소 입자들이 공기중에 날아가 사람들과 섞여 들었다. 특히 어린이나 노인들은 이런 환경에 훨씬 더 민감했고, 많은 사람들이 병들어 죽어갔다.

뒤이어 1814년 에메랄드 그린이라는 새로운 안료가 나왔다. 에메랄드 그린은 색조가 훨씬 밝고 선명했으며, 쉽게 퇴색되지 않았기 때문에 사람들은 열광할 수밖에 없었다. 당연히 여기에도 비소가 들어가 있었고, 그렇게 초록색은 침묵의 살인자가 되어 사람들을 중독시키며 죽음으로 몰아갔다. 1860년에는 어느 상류층의 저녁모임에 에메랄드 그린이 곁들여진 푸딩을 나누어 먹었고 그 중 세명이 비소 중독으로 사망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결국 비소가 유해하다는 사실이 과학적으로 밝혀졌고, 세상에 나돌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 '녹색 산업'의 규모가 너무나도 컸기 때문에 에메랄드 그린은 금지되지 않았다. 여전히 왕실의 궁전에서부터 오두막집까지 더 널리 사용될 뿐이었다. 6인치의 샘플 벽지에는 사람 두 명을 죽이고도 남을 만큼의 비소가 함유되어 있었지만, 완전히 생산이 중단되는 데까지는 40년이 더 걸렸다.

 

 

 

예술계 마저 버린 녹색

한편 18세기 과학자들과 예술가들에 의해 보색 이론이라는 새로운 색상 체계가 만들어졌다. 빨강, 파랑, 노랑 이 3가지 원색과 이 색들이 섞여서 만들어지는 초록, 보라, 주황으로 그들은 각자 보색 관계에 놓여 있다는 이론이었다. 현재에도 그렇지만, 보색이론은 당시 예술가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저명한 예술가들 뿐만 아니라 순수 미술을 전공한 수많은 유학파들까지 빨강, 파랑, 노랑의 순수한 원색만을 가지고 작업을 하겠다고 선언했다. 초록색은 3원색에서 떨어져나온 2차적이고 부수적인 색으로 취급되면서 환영받지 못했다. 예술가들에게, 특히 순수미술을 하는 이들에게 표현력과 독창성을 돋보이게 만들어 줄 너무나도 강력한 무기가 바로 색깔인데 말이다. 몬드리안을 대표로하는 모더니즘 화가들, 사물의 기능과 단순함을 추구했던 바우하우스 학파들까지 초록색을 예술 세계의 바깥으로 쫓아냈다. 

 

 

 

새로운 녹색

하지만 세상에 그 어떤 색도 미움 받기만 하는 색은 없다. 세상 모든 사람이 나를 미워하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예술가들에게 잠시 버림 받았던 초록은 그들이 만든 보색 이론 때문에 새로운 의미가 생기기 시작했다. 초록은 금지와 경고를 연상시키는 빨강의 보색이라는 이유로 허용과 동의를 의미하는 색으로 자리잡게 된다. 보색 이론의 등장 이후에 이전부터 존재했던 초록을 긍정적으로 인식하던 관습이 더 강해졌다. 이 때부터 병원이나 약국의 녹십자, 도로 교통 표지판 등 우리 주변에 더 적극적으로 활용되기 시작했다.

 

 

 

지폐는 왜 초록색일까?

 

이러한 기능적인 측면에서 사용되고, 전 인류에게 가장 보편적으로 인식된 초록색은 아마 돈일 것이다. 물론 오늘날의 지폐에는 정말 다양한 색들이 채택되어 사용되고 있지만, 지폐 하면 떠오르는 기축통화인 달러는 바로 초록색으로 연결된다. 달러가 초록색을 선택했던 이유는 먼저 보안적인 이유로 위조를 방지하기 위해서였다. 처음 미국에 지폐가 유통 되었을 때 위조하는 가장 주된 방법은 저가 지폐를 탈색해서 고가 지폐로 바꾸는 것이었다. 그래서 Canada Bank Note Tint라 불리는 초록색 잉크를 개발해서 지폐를 생산했는데, 지폐에 칠해진 이 녹색 도료는 탈색이 어려워 위조하기가 힘들어지게 되었다. 그리고 당시에는 흑백 카메라만 있던 시절이라 녹색으로 된 지폐는 위조된 지폐와 식별하기 용이했다. 그 이후에 기술이 발전하여 다른 색으로 변경할 수 있는 기회가 얼마든지 있었지만, 초록색이 주는 안정감과 이미 굳혀진 신용을 상징하는데 도움이 되어 녹색 지폐를 그대로 유지하기로 했다. 여전히 금융, 재정, 은행과 관련된 모든 것들에 녹색이 상징적으로 사용되고 있으며 녹색은 보안과 신뢰의 이미지까지 확고히 구축할 수 있게 되었다.

 

 

 

수술복은 왜 초록색일까?

과거 침묵의 살인자였던 녹색이지만, 오늘날에는 생명을 살리는데 큰 역할을 하고있다. 충격적이게도 20세기까지만 해도 외과 의사들은 평상복을 입고 수술을 했다. 시간이 흘러 가장 위생적이고 청결한 색인 흰색이 수술복으로 채택되었다. 흰색 옷을 입고 수술을 진행하면 어떻게 될까? 예상했겠지만, 흰 옷에 온통 피가 묻어 아주 끔찍한 현장이 연출될 것이다. 아무리 수술 경험이 많고 피가 익숙한 의사여도 흰색 옷에 적나라한 피는 심리적으로, 미학적으로 좋을 수가 없다. 더 치명적인 것은 흰색 위의 빨강은 의사들의 집중력을 심각하게 방해한다는 것이다. 지금 당장이라도 흰색 배경 위에 놓인 빨간색을 응시하다 다른 곳을 쳐다보면 빨간색의 보색인 초록색이 둥둥 떠다니는 현상을 경험하게 된다. 이런 잔상이 남는 것만으로도 집중력을 떨어뜨리지만, 강한 색상을 너무 오랫동안 보다보면 실제로 눈의 감각이 저하되어 색을 인지하기가 더 어려워진다. 컬러리스트인 나도 오랜시간 작업을 하다보면 눈 앞이 깜깜해지고 수백개의 색들이 공처럼 튀는 현상이 일어나는데, 이 때 흔히 '눈이 돌아갔다'라고 하면서 잠시 휴식을 취하고 온다. 사람의 생명이 걸려있어 그 무엇보다 집중해야 하는 수술에 내가 겪은 것처럼 눈이 돌아간다면 정말 너무나 끔찍하다.

결국 이 문제는 1960년대 수술복의 색이 바뀌면서 해결된다. 특정 색의 채도를 낮추거나 탁하게 만드는 가장 좋은 방법은 반대색을 섞는 방법이다. 빨강의 보색인 초록색 옷에 피가 스며드는 순간 빨간색은 그 힘을 잃어버린다. 그리고 피로 가득한 수술실에서 오랫동안 빨간색에 노출된다 하더라도 보색인 초록색을 보면 저하되었던 눈의 감각을 다시 찾을 수 있게 된다. 

 

 

 

이슬람이 초록색을 사랑하는 이유

초록색을 가장 많이 발견할 수 있는 곳은 아마 이슬람권이 아닐까 한다. 그들만큼 초록색을 숭배하는 곳은 없을 것이다. 전 세계 모든 이슬람 사원은 초록색을 사용하여 지붕과 그들을 상징하는 간판을 만들고, 선지자 무함마드는 초록색 터번을 자주 두르고 등장한다. 무함마드 시대에 녹색은 창조, 낙원, 부활을 상징했으며 선지자인 무함마드 그 자체를 뜻하기도 하는 신성한 색이었다. 현재도 이슬람 국가의 국기들을 보면, 거의 대부분 녹색을 지배적으로 사용하고 있다. 제각기 모양은 다르지만, 선지자와 더불어 새싹이 돋아나는 낙원과 오아시스를 의미하는 것은 모두 같은데, 이는 서남아시아의 건조하고 척박한 땅에 자리잡았던 그들의 이상향을 의미하는 것이 아닐까? 아마 초록색을 자연과 가장 먼저 연결지은 것은 바로 그들일 것이다.

 

 

 

남의 밭이 더 푸르다

이렇게 자연과 연결되어 건강하고 편안한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색은, 역설적이게도 인간의 가장 불편한 감정인 시기와 질투의 의미를 갖는다. 서구 문화권에는 The grass Really is greener on the other side of the fence(옆집 잔디가 더 푸르다)는 말이 있는데, 우리의 '남의 떡이 더 커보인다'와 같은 의미의 속담이다. 이 말은 대문호 셰익스피어가 인용하면서 더 유명해졌고, 초록색이 질투를 만들어 낸다는 의미가 굳어졌다. 특히 셰익스피어는 자신의 작품에서 남의 것을 탐하고, 질투하는 자를 '녹색 눈을 가진 괴물'이라는 비유로 자주 등장시켰다.

 

우리가 풀밭에 들어와있으면 흙과 나뭇가지, 작은 벌레들과 거미줄까지 보고싶지 않은 것들도 눈에 들어오게 된다. 한편 건너편 이웃집의 풀밭은 정갈하게 잘 정리 되어있고, 나무도 훨씬 더 파릇해보인다. 다시 내가 서있는 풀밭으로 돌아보면 각종 해충과 들짐승, 자연재해 때문에 내가 가진 정원만 괜히 더 못나보일 것이다. 혹시 우리는 주변에 일어나는 일을 바라볼 때 초록 눈을 갖고 보고 있지는 않을까? 집, 학교, 직장, 친구, 심지어 가족까지. 나와 가장 가까이 있는 그들은 항상 아늑하고 따뜻하지만, 너무 가까이 있기 때문에 아주 작은 흠도 크게보일 수밖에 없다. 반면에 저기 멀리 보이는 저 사람들은 항상 좋아보이고 유난히 빛나보인다. 건너편 이웃집의 정갈한 풀밭처럼. 하지만 막상 이웃집 정원으로 가면 우리집 정원처럼 관리해야 할 것들만 보이지 않을까? 그리고 이웃집 정원에 서서 우리집 정원을 바라보면 어떨까? 어쩌면 그렇게 파릇하던 이웃집 정원보다 훨씬 더 푸르게 보일 수도 있다. 너무 멀어서 가볼 수 없는 별도 알고보면 생명이 살아 숨쉴 수 없는 최악의 행성일 수도 있다. 남과 비교하는 것은 때때로 성장과 발전을 가져오지만, 이것 때문에 나를 갉아 먹고 있는 느낌이 든다면 어느 순간 내가 초록 눈의 괴물이 되어있는 건 아닌지 생각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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