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로 갈 수 있는 가장 빠른 색, 실버"

 

애플 하면 가장 먼저 무엇이 떠오르는가?

아마 창업자 스티브잡스와 함께 애플의 로고인 '한입 베어문 사과'가 가장 먼저 떠오를 것이다. 그렇다면 이 로고의 뒷배경에는 무엇이 있을까? 애플에서 나오는 모든 제품이 실버로 만들어지기 때문에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이 은색, 실버 컬러를 연상하게 될 것이다. 물론 실버컬러 말고도 다양한 색상의 제품이 출시되기는 하지만, 애플의 가장 대중적이고 기본적인 색은 단연코 실버라고 할 수 있다. 앞으로도 새로운 제품이 출시된다면 가장 먼저 실버로 나오지 않을까?

 

그럼 단순하고 명료한 애플 철학과 함께하는 실버, 은색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해 보자.

 

 

1. 특징

 

원소번호로 AG, 원자번호로는 47. 은색은 은이라는 광물에서 비롯된다.

은은 반사율이 높아 눈부시게 반짝거리고, 전도율 또한 매우 좋아서 가장 빠른 금속으로 알려져 있기도 하다. 뿐만 아니라, 꽤나 부드럽고 연한 특성 때문에 다른 금속보다 얇게 펼 수 있고, 가늘게 펼 수 있어서 다양한 분야에서 활용되고 있다. 대표적으로 금속공예, 주얼리, 반도체, 수저나 식기를 만드는데 널리 사용되고 있고, 과거에는 화폐로서 은화를 사용하기도 했다. 더불어 갑옷이나 방패와 같은 방어구에도 사용되었는데, 이때는 적의 공격으로부터 몸을 보호하는 기능보다 은에서 뿜어내는 신성함과 위엄으로 적을 위협하는 역할이 더 컸다고 한다.

 

 

2. 은색

한편 색채학의 관점에서 은의 색을 뜻하는 은색은 단순히 색깔이라 볼 수는 없다. 은색은 '회색에 광택이 더해져 금속 재질의 질감이 느껴지는 그 느낌', 간단하게 말해서 "반짝이는 회색"을 은색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반짝이는 광택 속에 숨겨진 매력 때문에 우리는 "은빛"이라는 말을 사용하기도 한다.

 

 

3. 상징

 

은색은 밝고, 깨끗하고 지적인 색이다. 때문에 아름다움과 환희를 표현할 때, 신비로운 분위기를 만들고 싶을 때 자주 사용된다. 태양빛에 일렁이는 물결이나, 밤하늘의 은하수만 생각해도 은색이 쉽게 연상될 것이다.

은색은 달을 상징한다. 그래서 달의 여신 아르테미스와 가장 가까운 색이었고, 고대 연금술사들은 은색을 보고 달을 가리키는 "Luna"라 부르기도 했었다. 이렇게 고대 사람들은 하늘을 수놓는 달과 별을 보고 은색을 신성시하게 되었고, 어떤 초월적인 힘이 있다고 믿었다. 그래서 은에는 늑대인간과 마녀를 물리치고 악귀를 쫓아낸다는 미신이 생겨났고 한때 퇴마사들의 필수품이 되었다. 그래서 지금도 판타지 소설이나 게임, 영화 등에서 은으로 만든 무기로 괴물을 물리치는 장면을 종종 볼 수 있다.

 

하지만 은색의 밝고 깨끗한 느낌 반대편에는 서늘함과 두려움이 숨겨져 있다. 차가운 초승달, 위태로운 살얼음판, 냉담한 연인은 언제나 춥고 날카롭게 그려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달의 여신은 누군가에게 시기와 질투를 느끼고 분노하면 은화살로 상대를 응징하기도 했다. 은색은 달의 여신의 은화살처럼 은색은 세상에서 가장 빠르고 날렵한 색이다. 마블 세계관에서 가장 빠른 히얼의 이름이 "퀵실버(Quick Silver)"인 것만 봐도 모든 게 설명이 되지 않는가?

 

 

4. 브랜드

 

50년 전 독일의 자동차 브랜드 '벤츠'가 만든 이 은색 스포츠카가 주요 레이싱 경기에서 우승컵을 차지했고, 이때 이 차에 붙여진 별명이 "은빛화살"이었다. 실제로 은색은 태양빛을 반사해서 열을 감소시키는 기능을 하기 때문에 속도를 내는데 도움을 준다. 그 뒤로 다른 자동차 회사들도 벤츠의 은색을 모방해서 만들 정도로 모두가 은빛화살처럼 되고 싶어 했다. 이처럼 은색은 빠르고 날렵한 이미지, 세련된 분위기 때문에 현재도 많은 자동차 브랜드에서 정말 다양하게 활용되고 있다. 자동차뿐일까? 아니라 현대적이고 고급스러운 특징을 내세우고 싶은 수많은 기업과 브랜드들이 은색을 적극적으로 사용하고 있다. 하지만 이 실버 컬러를 가장 잘 머금고 있는 브랜드는 당연히 이 애플이라고 생각한다.

 

 

5. 애플의 실버철학

 

물론 애플이 제품 컬러를 실버로 선택한 이유는 제품 출시에 앞서서 시제품의 디자인 비용을 줄이기 위해 채택되었다가 그게 그대로 굳어진 일화가 있지만, 결과적으로 정말 탁월한 선택이었다. 혼자 돋보이기보다 함께 어울리고 조화를 추구하는 실버는 어디에 배치해도 잘 어울릴 수 있어서 모두에게 사랑받을 수 있지 않았을까?

 

 

역설적으로 실버컬러는 애플의 디자인을 더 돋보이게 만든다. 예를 들어 이 빨간색 의자를 보면 가장 먼저 강력한 색상부터 눈에 들어올 것이다. 그런데 이 색을 전부 다 빼버리고 실버 컬러로 만들면 어떻게 될까? 색을 빼게 되면 유려하고 자연스러운 곡선만 남게 된다. 실버는 아이폰부터 아이맥, 맥북, 맥프로에 이르기까지 모든 제품의 심플한 실루엣을 드러나게 만들었고, 그렇게 전 세계인을 매료시켰다. 나는 디자인을 돋보이게 만드는 이 실버철학이 기업을 넘어 애플 왕국이 되는데 큰 역할을 했다고 확신한다.

 

 

6. 패션과 예술

 

그렇다면 패션계에서의 실버는 어떨까?

먼저 실버 주얼리는 앞서 설명했던 은색의 특징을 고스란히 갖고 있어서, 화려하기보다는 조화로운 분위기를 연출한다. 그리고 때로는 시원하고 지적인 이미지를 만들기도 한다. 조화를 추구하는 실버이지만, 반짝이는 광택 때문에 과감하게 자신을 보여줄 때도 있다. 실버를 입거나 신는 순간, 존재감을 확실하게 드러내게 된다. 하지만 이때에도 조화를 이루려는 은색 본연의 속성에는 어긋나지 않는다. 여전히 주변의 포인트를 살려주거나 이끌어주는 역할을 하게 된다. 항상 유행은 왔다가 사라지지만 매년 반복되는 특정 리듬과 트렌드가 있는데, 실버는 매 시즌 신선하게만 느껴진다. 그렇게 실버는 트렌드를 견인하고 있다.

 

 

7. 금과 은의 관계

 

끝으로 금과 은의 관계에 대해 살펴볼까 한다.

은을 떠올렸을 때 대부분 금을 같이 생각하게 되는데, 대부분의 경우 은보다는 금이 더 희소하고 가치 있게 여겨진다. 금은 은과는 완전히 반대되는 특징을 갖고 있다. 은이 차갑고 냉담하다면, 금은 따뜻하고 온화한 온도를 가지고 있다. 은이 조용하고 날렵하게 날아갈 때 금은 시끄럽게 소리를 내며 느릿느릿 걸어온다. 은이 정제되고 조화로운 분위기라면 금은 화려함을 추구하면서 돋보이고 싶어 하는 특징이 있다.

 

 

8. "실버에 관하여"

 

우리는 화려하게 돋보이고 싶어 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그렇게 모두가 시끄럽게 소리를 지르고 자극적인 것을 쫓아다닌다. 그런데 잠깐 멈추고 돌아보면 조용히 할 일을 하면서 묵묵히 자기 자리를 지키는 사람들이 있다. 지금 반짝이는 유행을 당장 따르지 않고, 진짜 자기가 원하고 해야 될 일이라면서 끝까지 해내는 사람들이다. 결국 유행은 돌고 돌아서 원래 자리를 지킨 사람들에게 오게 되어있다. 그때 그 사람들은 누구보다 밝은 빛을 밝힐 것이다. 그리고 그 빛은 아마도 은빛으로 빛을 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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