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나 맑고 청량한 포카리처럼
우리가 갈증 날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음료는 단연 '포카리스웨트'이다. 심장이 마르도록 뛰고 나서 파란색 캔을 벌컥벌컥 들이켰을 때 그 시원함과 청량함은 말로 표현할 수가 없을 것이다. 시원함과 청량함을 떠올리면 포카리가 떠오르고, 포카리 하면 자연스럽게 파란색 배경과 흰색 물결이 떠오른다. 이러한 연상을 의도하듯 지금까지 나왔던 포카리스웨트의 모든 광고가 파란색과 하얀색을 주조색으로 사용했고 최근에 나왔던 광고의 메인 카피는 "네 안의 파랑을 깨워봐!"였다. 아마 파란색이 시원함 뿐만 아니라 맑고 순수한 이미지와 연결했을 때 환상의 조화를 이루기 때문이지 않을까? 파랑은 시원함과 더불어 순수함을 연상시키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파랑은 정말로 특이하고 변덕스러운 색이다. 밝은 파랑은 활기와 젊음을, 그보다 더 짙은 파랑은 신뢰와 현명함을 말하지만 그보다 더 깊어지면 냉정함과 냉담함으로 싸늘하게 돌변한다. 그리고 그 심연 깊숙한 곳에는 불안과 우울이 혼재해있다. 뜨겁게 타오르는 태양빛 이면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어둠 속에 도사리고 있는 파랑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사랑받는 색
냉정과 안정이 동시에 느껴지는 변덕스러움에도 불구하고 파란색은 세계에서 가장 선호하는 색이다. 이는 스트레스와 긴장이 고조되는 현대 사회에서 안정감을 느끼고 싶은 욕구와 같은 미시적인 관점에서부터 범세계적으로 평화와 평온을 추구하는 거시적 흐름에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다. 더불어 기업은 높은 기술력과 혁신적인 이미지를 어필하면서 신뢰를 줄 수 있고, 개인은 시각적으로 무해하지만 꽤나 전문적이고 센스 있는 사람으로 보여질 수 있다. 그래서 오늘날까지도 파랑은 모두에게 사랑받는 색이다. 그렇다면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가장 사랑받는 파란색은 어떤 이야기를 가지고 있을까?
우리의 선조는 파랑에 결핍되어 있었다.
어떤 특정 색이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은 우리가 정확하게 그 색을 인식하고, 언어로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이다. '사과가 빨갛다'고 표현할 수 있는 것은 인간이 눈으로 볼 수 있는 가시광선 내에서 특정 파장을 '빨갛다'는 언어로 규정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인간에게 있어서 컬러란 무엇인지 물어본다면 '컬러는 언어다'라고 명확하게 대답할 수 있다. 하지만 서양 최초의 문학인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와 일리아드만 살펴봐도 '파란색', '파랗다'는 표현은 조금도 찾아볼 수가 없다. 현대 시대에 이토록 선호되고 호불호가 없는 파랑의 과거는 세상에 존재조차 하지않는 색이었다는 것이다. 오죽하면 그리스 고전을 연구하는 것이 취미였던 영국의 총리 '윌리엄 글래스턴'은 '고대 그리스인들은 색맹이 틀림없다'고 말했다. 오디세이뿐만 아니라 전 세계 다른 어떤 문화의 초기작품에서도 파란색은 찾아볼 수 없다. 왜냐하면 고대세계의 자연에서 파란색을 찾아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파란색 그 자체인 하늘과 바다는 인류가 탄생하기 훨씬 이전부터 존재했을텐데 너무나도 이상하지 않은가?
고대 세계로 거슬러 올라가면, 우리의 선조들에게 하늘이란 실재하지 않는 초 자연적인 것으로 여겨졌다고 한다. 분명히 눈에는 보이지만, 실재하지 않기 때문에 색으로 여겨지지 않은 것이다. 바다 또한 중세시대 이전까지는 하늘과 함께 검정과 흰색, 회색 등으로 표현되었다. 중세시대가 되어서도 강과 바다를 표현하기 위해서 녹색을 사용했다. 색의 역사가 진행되는 동안 파란색은 인류에게 꽤 오랜기간 결핍되어 있었다. 그래서 항상 낯설고 경계해야 하는 색이었으며, 침입자와 이방인을 상징하거나 쫓아내기 위해 사용되었다.
애초에 인간의 눈은 모두 갈색이었다. 하지만 아프리카에서 점점 추운 북부 지역으로 이동하면서 파란 눈을 가진 사람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멜라닌이 결핍되어 나타나는 파란 눈은 파란색이 결핍된 인류에게는 너무나도 낯선 존재였다. 그래서 로마와 이슬람 등 몇몇 문화권에서는 파란 눈을 거칠고 천박하며, 야만스럽다는 편견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오늘날 파란 눈은 세계 인구의 8%의 비중을 차지한다.
종교가 바꾼 파랑, 파랑의 시대
파란색에 대한 경계와 멸시는 중세를 지나 로마가 멸망하면서 서서히 그 경향이 바뀌게 된다. 그 무렵 항해술이 발달하고, 항해지도가 중요해지면서 원래 녹색으로 표현되었던 바다를 숲과 구분짓기 위해 파랑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여전히 자연에서 파란색을 얻는 것은 어려웠지만 남동석과 인디고 등을 이용한 천연 색소를 만드는 시도는 계속되고 있었다. 결정적으로 파란색의 가치가 치솟게 된 계기는 염색 기술의 발달이 아닌 성직자와 신학자들의 생각에 변화 때문이었다. 신은 그 무엇보다 높고 빛나는 존재이며, 그 빛은 청색과 연결 지을 수 있었다. 이때 서양에서는 처음으로 하늘을 파란색으로 표현하게 되었다. 특히 서유럽 전역에는 성모 마리아에 대한 공경이 널리 퍼지던 시기였고, 그 때문에 성모마리아는 하늘을 상징하는 파란색을 입게 되었다. 더불어 교회 내부를 환한 빛으로 덮는 것은 신을 위해 어둠을 몰아내는 일이라 생각하여 신성한 분위기를 만들기 위해 스테인드 글라스를 설치했다. 이 화려하고 다채로운 천장에는 단연 파란색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게 되었다.
파랑에 대한 열렬한 숭배는 서양에서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힌두교에서도 파란색을 신성하고 순수한 색으로, 여겼고 힌두교의 최고신 비슈누 또한 피부색이 파랗게 표현되었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알라딘의 지니 또한 영적인 상징성과 더불어 초월적인 존재로 보이기 위해 파란 피부색으로 등장한다. 무엇보다 숭고하고 고귀한 파랑은 황후의 색이었다. 시대를 막론하고 황실의 계급과 신분을 나타내는 데에는 색이 중요한 역할을 했으며, 특히 황실 여성들의 의상은 그 중요성이 더욱 부각되었다. 따라서 황후의 의상에는 파란색이 자주 사용되었는데, 특히 대례복인 '적의'에 사용된 파랑은 숭고한 이미지 뿐만 아니라 우아하고 절제된 아름다운 이미지도 가지고 있다. 이렇게 낯설고 야만적인 색에서 신성하고 추앙받는 색이 된 것은 시대가 흐르면서 기술과 문화가 복합적으로 발전했고, 사람들이 바라보고 생각하는 것 또한 변화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종교와 신앙이 굳게 자리잡고 있었다.
진정한 파랑, 궁극의 파랑
종교적 영향에 힘입어 파랑은 신의 색이 되었지만, 여전히 쉽게 만들 수 있는 색이 아니었다. 특히 성모마리아를 그려도 손색없는 진정한 파란 물감을 얻는 일은 기나긴 시간과 막대한 비용, 실패에 굴하지 않는 열정이 필요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와 같은 당대 최고의 화가들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들 또한 엄청나게 비싼 비용과 시간을 들여 최상급의 파란 물감을 고집했고, 궁극의 파랑을 얻기 위해 파산을 감내하는 일도 생겼다. 당시 궁극의 '파란 물감'을 만들 수 있는 열쇠는 청금석이었다. 청금석은 주로 아프리카에서 채굴 되었는데, 세월이 흘러도 빛이 바래지지 않는 짙은 군청색이었고, 그 어떤 파란색도 흉내낼 수 없는 감동이 있었다. 청금석을 대체하기 위해 남동석으로 파란색을 만들기도 했지만 청금석처럼 깨끗하고 투명한 색이 나오지는 않았다. 날이 갈수록 치솟는 청금석 때문에 일부 상인들은 남동석을 군청색으로 만들어 속여 팔기도 했다. 따라서 해당 색소가 청금석인지, 남동석인지 감별하는 기술과 직업까지 생기기에 이르렀고, 이 과정은 매우 까다롭고 번거로웠지만 화가들은 기꺼이 감별작업을 이행했다. 왜냐하면 진짜 청금석으로 그려진 그림만이 더 높은 가치를 갖고, 비싸게 팔릴 수 있을테니까.
이러한 '청금석 사태'는 세월이 흘러 '프러시안 블루'가 나오면서 잠재워졌다. 18세기 독일의 화가 '하인리히 디스바흐'가 만든 이 최초의 합성색소는 청금석으로 만든 색소처럼 색이 바래지 않으면서 저렴했고, 만들기도 쉬웠다. 그 후에도 양질의 '파란 물감'을 만드려는 시도는 계속 되어서 수 많은 종류의 '파랑'이 생겨나게 되었다.
염료 산업을 이끈 대청과 인디고
파란 물감이 필요했던 화가들과 색상 장수들이 진정한 파랑을 찾기위해 끊임없는 노력을 기울인 것처럼, 직물 염색 사업에 종사하는 사람들 또한 그 여정을 지나왔다. 청색 염료를 만드는 데 많이 사용되는 풀인 대청은 제품화를 하기위해 꽤나 복잡한 과정을 거쳐야 했지만 유럽에서는 수세기동안 각광받는 염료였다. 마찬가지로 파란색 염료를 만들 수 있는 쪽이라는 식물도 있는데, 우리에게 잘 알려진 말로 '인디고'라고 하기도 한다. 인디고는 최소 5천년 전 인도 북서북의 인더스 계곡에서 처음 재배되었는데, 대청보다 더 저렴한 비용으로 생산할 수 있으면서 질은 더 좋아서 어느 순간 대청을 훨씬 앞찌르게 되었다. 인도에서 유래된 인디고는 정작 인도의 상류계층인 브라만에게 멸시를 받앗는데, 천은 자연상태로 있어야 한다는 믿음과 그것이 순수하지 못해 불가촉 계급과 연결된다는 인식 때문이었다. 따라서 인도에서의 염색작업은 고립된 지역에서 무슬림이 담당하게 되었다.
노예와 착취의 블루, 그리고 블루스
17세기가 될무렵 인디고는 세기의 전성기를 맞게된다. 서인도의 이상적인 기후도 있었지만, 결정적으로 풍부한 노예 공급이 인디고 생산을 특히나 가속화 시켰다. 한편 17세기 중반이 되었을 때에는 카리브 지역에서도 인디고가 재배되었고 세계 염료시장에서 인도를 앞서게 되었다. 더불어 사우스 캐롤라이나에서도 인디고 풍년이 이어졌는데, 이 산업은 계속해서 커져 연간 500톤에 이르는 인디고 염료를 수출하기 시작했다. 인디고는 염료 시장을 뜨겁게 달구었고, 염색 산업 전체에 크나큰 수혜를 가져다 주었다. 당시 붉은색 염료를 만들던 상인들이 이른바 '청색 열풍'을 막기위해 교회의 직공들에게 악마를 그릴 때 파란색으로 그려달라고 요청할 정도였다. 그렇게 인디고를 재배하는 '쪽 농장' 지주들은 엄청난 부를 축적할 수 있었다. 말 그대로 쪽빛처럼 푸른 나날들이 펼쳐진 것이다. 하지만 항상 빛에는 그림자가 지듯이 쪽빛 아래에는 차디찬 그늘막이 드리워져 있었다. 염색 산업의 성장 이면의 모든 힘들고 궂은 일은 농장 노예들의 몫이었다. 산업이 번성하는 40년동안 노동자와 노예들을 인정사정없이 착취했고, 이는 1870년 대규모 폭동으로 이어졌다. 더 나아가 1917년 간디와 함께 최초의 시민 불복종 운동이 촉발하는데 영향을 주기도 했다. 밝고 희망찼던 활기의 블루가 그들의 눈에는 그 무엇보다 우울하고 불행한 블루로 보였을 것이다.
사는게 힘들고 지친 노동자들에게 불행함과 우울감은 일상이었다. 특히 19세기 흑인에게는 가혹한 경찰과 감옥, 백인들의 압제와 폭력 등으로 혹독하고 무자비한 세상이었다. 그렇게 어둡고 짙은 감정을 달래기 위해 그들이 겪은 사연을 가사로 가득 담아 노래했는데, 이 흑인들의 세속 음악이 되었다. 이것이 바로 우리에게 알려진 '블루스'라는 장르이다. 냉혹한 현실과 우울의 감정을 일으키는 파란색 그 자체가 음악이 되었고 그 음악은 당연하게도 차갑고 불편한 현실을 표현했다.
"Feeling blue", 우울하다의 어원은 우리를 둘러싼 환경에서 비롯된다. 아득히 깊은 바다에서 내리는 비와 폭풍에서 오는 공포, 그리고 항해 중 선원이 사망했을 때 푸른색 깃발을 달고 돌아오는 관습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더불어 어둠이 드리워지는 저녁, 창백한 시체와 새파랗게 질린 얼굴 등 불안하고 공포스런 상황과 연결되며 파랑이 탄생했다. 이렇게 부정적인 감정을 불러 일으키는 탓에, 블루무비, 블루조크, 블루좀비, 블루콜라 등 나쁜의미를 뜻하는 언어로 사용되었으며, 얼마전 전인류에게 위기를 가져다준 전염병 때문에 '코로나 블루'라는 말이 생겨나기도 했다.
파랑이 바꾼 경제와 사회
그럼에도 불구하고, 파랑은 세계인이 가장 좋아하는 색이다. 사람들의 생각이 바뀌고 트렌드가 변화하는 것은 다양한 사회적, 문화적 흐름이 복합적으로 작용했을 때 일어난다. 중세 시대에 종교적인 이유로 청색열풍이 불었지만, 그와 맞물려 유럽에서는 모든것을 분류해서 정리하는 활동이 왕성하게 일어났다. 경제 발전과 더불어 철학과 법학 등 전반적인 지식의 발전으로 개인을 계층화하고 신분을 식별하기 위한 징표,가문의 문장, 직업을 나타내는 어떤 상징들이 만들어야 했다. 아직 파란색이 존재하지 않던 시절이었으므로 흰색과 빨강, 검정 3가지 색상만 사용했기 때문에 새로운 색배합이 필요해졌다. 이 때 파랑은 초록, 노랑과 함께 합류하여 6가지 색상체계로 세상을 분류하고 정리했던 것이다.
청색이 유행하기 시작하면서 파란색을 만들기 위한 다양한 기술도 눈부시게 발전했고, 19세기에 일어난 낭만주의가 '청색 산업'을 가속화시켰다. 특히 낭만주의 시인들이 파란색을 멜랑콜리의 색으로 숭배하다시피 했으니 말이다. 이 청색의 파도는 1850년 유대인이었던 '리바이 스트라우스'에 의해 더 거대해지게 된다. 리바이스라는 이름은 길게 설명하지 않아도 모두가 잘 알것이다. 두꺼운 천을 인디고로 염색해서 작업복으로 만들었는데 이 때 만들어진 청바지는 패션문화에서 절대 빼놓을 수 없는 옷이 되었다.
30년이 지나도 여전히 사랑받을 색
우리가 살고있는 현대에는 국제연합, 유네스코, 유럽연합과 같은 전 인류를 위한 기구부터 IBM, Meta, HP, 시티그룹, 그리고 우리의 삼성과 같은 기업들까지 적극적으로 파란색을 앞세워 본인들의 이미지를 구축하고 있다. 파랑은 그 자체로 안정적인 색이기 때문에 사람들에게 신뢰를 주기 때문이다. 절대 먼저 공격하거나 위반하는 일이 없으며 조용히 안정감을 주는 색이다. 언제든 사람들에게 공감과 합의를 이끌어 내야 할 때, 모두에게 동의를 얻고 결집시켜야할 때, 그리고 때로는 세련되고 지적인 사람으로 보여야할 때. 그 때마다 우리는 파란색을 선택하기만 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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