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영상을 볼 때 그 장면 자체로 압도될 때가 있습니다. 지금까지 본 적 없는 그림 같은 장면이나 실제보다 더 실제 같은 장면을 볼 때, 혹은 미장센과 그 분위기에 매료되기도 해요. 장면이 어떤 감정을 일으키거나 영상미가 돋보이면 시네마틱, 드라마틱, 필르믹하다고 말합니다. 디지털 기술이 발전하면서 이제는 완전히 필름을 대체하게 되었고, 필름을 넘어 더 풍부한 대비와 색조를 만들 수 있게 됐어요. 정말 좋은 품질의 데이터를 얻고, 영상에 원하는 대로 컨셉과 아이디어를 불어넣을 수 있는 건 넓은 다이나믹레인지, 그리고 로그 촬영 덕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저 또한 영상을 기술적으로 접근하고 공부할 때 가장 인간적이고 매력적으로 느껴지는 것은 로그(Log)에요. 오늘은 로그를 이해하고 활용할 때 반드시 알아야 할 다이나믹 레인지에 대해 설명해 보겠습니다.

 

 

 

1. 눈(Eye)

 

먼저 다이나믹 레인지를 설명하기 전에 앞으로 나올 개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서 우리 눈의 작동원리에 대해 알아보려 합니다. 물체에 반사된 빛이 각막을 지나서 망막에 맺히게 되면 망막에 있는 시세포들이 반응하게 됩니다. 시세포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는데요. 빛의 밝기에 활성화되고 밝기 정도를 감지하는 간상체(간상세포), 그리고 색상을 감지하는 추상체(원추세포)가 있습니다. 이게 정확한 표현은 아니지만, 간상체가 명암을 구분해서 윤곽선을 그리면 추상체가 그 위에 색을 입혀서 뇌로 보낸다고 생각하면 이해하기 더 쉬울 거예요. 우리는 그렇게 물체와 색상을 식별합니다.

 

 

다음은 눈이 밝기에 반응하는 원리입니다. 우리 눈은 1배만큼 더 밝아지는 걸 느끼려면 실제로는 2배 더 밝은 빛이 필요합니다. 예를 들어 지금 방의 밝기를 0이라고 해보겠습니다. 그럼 우리가 이 방의 밝기를 딱 1의 밝기만큼 더 밝게 느끼려면 기존 0의 밝기보다 2배 더 밝은 빛이 필요합니다. 이제 1의 밝기가 되었습니다. 그럼 1에서 다시 1만큼 더 밝아지려면 몇 배의 빛이 필요할까요? 기존 2배에서 또 2배의 빛이 더 필요한 거니까 4배 더 밝은 빛이 필요해요. 이제 밝기가 2가 되었습니다. 그럼 2에서 다시 1만큼 더 밝아지려면? 즉 3이 되려면 기존 4배에서 2배의 빛이 더 필요하니 8배 더 밝은 빛이 필요합니다. 이제 그다음 밝기가 4가 되려면 16배 더 많은 빛이 필요하다는 걸 자연스럽게 아실 거예요. 이런 방식으로 밝기 단계를 1씩 계속 높이려면 2, 4, 8, 16, 32, 64, 128, 256... 이전에 필요한 밝기 양보다 2배씩 더 필요하게 됩니다. 여기서 우리 눈의 감각이 밝기에 반응하는 빛의 자극은 2n 으로 계산해 낼 수 있습니다. 그럼 만약 지금 보는 것보다 8배 더 밝게 느끼려면 실제로는 몇 배의 더 밝은 빛이 필요할까요? 28 = 256입니다.

 

여기에서는 더 깊게 들어가지 않고,

눈에는 밝기와 색상을 감지하는 2가지 시세포가 있구나.

우리 눈은 실제로 2배 더 밝아져야 1배 밝아졌다고 느끼는구나.

 

이 두 가지만 확실하게 짚고 넘어가도 충분합니다. 더 자세한 건 나중에 색채학을 다룰 때 설명하겠습니다.

 

 

 

2. 다이나믹 레인지(Dynamic Range)

 

다이나믹 레인지를 말 뜻 그대로 풀이하면 길이, 넓이, 높이, 부피 등 변동폭을 측정할 수 있는 범위를 뜻합니다. 에너지, 물류, 지식, 감정 어떤 것이든 최대 수용범위가 있어요. 아무리 힘들고 기분 나쁜 일이 있어도 크게 동요하지 않고 극복해나가는 사람은 감정의 다이나믹 레인지가 높은 사람이라고 할 수 있겠죠. 영상 기술에서 다이나믹 레인지는 측정할 수 있는 빛 에너지의 최대비율입니다. 조금 더 직관적으로 설명하면 가장 어두운 부분에서부터 가장 밝은 부분까지 얼마나 더 넓은 단계의 빛을 담아낼 수 있는지를 뜻합니다. 어떤 장면을 볼 때 모든 밝기의 분포가 풍부하고 세밀하게 표현된다면 우리는 그것을 본능적으로 '좋다'고 느낍니다. 만약 다이나믹 레인지가 정말 높은 카메라가 모든 빛을 온전히 담아내고 표현할 수만 있다면 우리가 눈으로는 본 적 없는 대비와 색조를 경험할 수 있게 될 거예요.

 

다이나믹 레인지는 카메라가 담아낼 수 있는 밝기 범위입니다. 그래서 카메라를 선택할 때 다이나믹 레인지는 그 어떤 스펙보다 중요한 요소가 됩니다. 카메라 스펙에서 다이나믹 레인지는 스탑 stop으로 표시합니다. 이론적으로 스탑stop이 높은 카메라는 더 넓은 범위의 밝기를 담아낼 수 있습니다. 그럼 그다음은 스탑에 대해 설명해 보겠습니다.

 

 

 

3. 스탑(Stop)

 

우리가 특정 물건이나 음식을 편의상 단위로 만들어 사용할 때가 있습니다. 고기 한 근, 쌀 한가 마, 연필 한 다스처럼 말이죠. 마찬가지로 밝기를 측정하고 조정하는 단위로 스탑(Stop)이라는 단위를 사용합니다. 촬영을 하면서 노출이나 감도, 셔터스피드를 한 단계씩 조정할 때 1stop 높이거나 낮춘다고 표현해요. 이 스탑stop이라는 단위는 앞서 설명했던 우리 눈이 밝기에 반응하는 원리와 똑같이 작동합니다. 현재 노출을 기준으로 1stop 올린다면 2배 더 많은 빛이 들어올 것이고, 1stop을 낮춘다면 들어오는 빛은 절반으로 줄게 될 거예요.

 

다이나믹 레인지를 측정할 때에도 스탑stop이 사용됩니다. 카메라에 들어온 장면을 가장 어두운 부분을 기준으로 1stop씩 올라가면서 가장 밝은 부분까지 몇 단계로 쪼갤 수 있는지 측정하고, 그 단계수를 스탑stop으로 표기합니다. 예를 들어 14stop인 카메라는 가장 어두운 부분(Black)을 기준으로 가장 밝은 부분(White)까지 14단계로 쪼갤 수 있다는 걸 뜻해요. 그럼 우리 눈이 작동하는 방식에 따라 214 = 16,384로 계산해 볼 수 있습니다. 이는 가장 어두운 블랙에서 16,384배 더 밝은 화이트까지 세밀하게 담아낼 수 있는 능력을 가졌다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좋지 않은 환경 속에서 모든 상황을 극복하면서 폭넓은 범위의 빛을 담아낼 수는 없을 겁니다. 어디까지나 통제된 최적의 환경에서 담아낼 수 있는 최대치를 표기한 것일 테니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높은 다이나믹 레인지를 가진 카메라는 좋은 이미지를 얻어내는 데 분명 큰 역할을 합니다. 그렇다면 카메라의 스펙 중 하나인 다이나믹 레인지는 어디서 결정되는 것일까요?

 

 

 

4. 다이나믹 레인지는 누가 결정하는가?

 

 

결론부터 말하면 다이나믹 레인지는 이미지 센서(Image Sensor)에서 결정됩니다. 자동차의 성능은 엔진에서 나오고 컴퓨터의 성능은 CPU에서 나오는 것처럼 카메라의 성능은 이미지 센서에서 나옵니다. 이미지 센서는 렌즈를 지나 들어온 빛을 전기신호로 바꿔주는 역할을 합니다. 빛이 전기 신호로 바뀌면서 밝기와 색상을 분석하고 저장할 수 있게 되는 거죠. 그래서 센서의 크기, 형식, 베이어 패턴 등에 따라서 이미지의 품질이 달라집니다. 센서가 빛을 전기신호로 바꾸고, 분석하고, 저장하는 과정에서 색과 대비를 얼마나 디테일하게 담을지를 정하고 제조사에 따라 그들만의 감성을 덧대기도 하는 거죠.

 

 

상기 이미지는 LUCID VISION LABS의 자료를 그대로 가져왔습니다.

이미지 센서를 자세히 보면 수백만 개의 센서 픽셀이 배열되어 있고, 센서픽셀은 마이크로 렌즈, 컬러필터, 포토다이오드 등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먼저 빛이 센서에 닿으면 광자는 전자를 생성하게 되는데요. *여기서 광자는 빛의 가장 작은 단위를 말합니다. 그리고 센서는 이 전자를 전압으로 변환해서 읽고 처리하는 과정을 거치게 돼요. 센서 픽셀에는 최대로 담아낼 수 있는 전하량이 한정되어 있는데 픽셀의 크기가 커질수록, 작동하는 전압이 커질수록 전하를 담을 수 있는 용량(Well Capacity)이 커지게 됩니다. 그리고 이 용량은 곧 다이나믹 레인지로 이어집니다. 변환되어 저장된 총 전하량에서 노이즈를 뺀 값이 바로 다이나믹 레인지를 측정하는 데 사용되는 지표가 되거든요. 저장된 전하량은 많은데 그에 비해 노이즈가 적다면 센서가 정확한 신호를 잘 측정했다는 것이기 때문에 높은 다이나믹 레인지를 가지게 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출처: https://thinklucid.com/ (루시드비전랩스)

 

센서의 원리와 작동방식에 대해서는 나중에 조금 더 자세히 하도록 하고, 다음 설명으로 넘어가겠습니다.

 

 

 

5. 토널레인지(Tonal Range)

토널 레인지는 다이나믹 레인지와 비슷한 의미로, 혹은 혼동되어 사용되기도 합니다. 두 개념이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명확하게 구분되어야 하는 개념으로 따로 설명 해보려 합니다. 

 

 

먼저 다이나믹 레인지는 카메라가 감지할 수 있는 밝기의 범위입니다. 결과가 어떻든 좋지않은 환경에서도 센서의 성능은 일정하게 작동하게 되죠. 그래서 이미 센서의 성능은 정해져있기 때문에 절대적인 개념이라고 할 수 있어요. 만약 다이나믹 레인지가 14stop인 카메라가 있다면 언제든 14stop에 맞는 성능을 보여줄 것입니다. 그리고 높은 다이나믹 레인지를 가진 카메라로 촬영한다면 그 어떤 경우에도 좋은 품질의 이미지를 담을 수 있는 데 유리하게 작용할 거예요.

하지만 토널레인지는 상대적인 개념입니다. 같은 날 같은 장비로 촬영해도 각 이미지의 토널레인지는 완전히 다를 수 있습니다. 토널레인지는 촬영된 장면 안에서의 실제 밝기 분포를 뜻하기 때문이에요. 환경에 따라서 14stop의 카메라로 촬영한다고 해도 그 이미지의 토널레인지는 14stop만큼 풍부하지 않을 수도 있는 거죠. 다만 토널레인지는 무조건 넓은 범위의 밝기 범위를 확보하는 것이 아닌, 올바른 명암을 표현하는데 활용됩니다. 따라서 장르와 분위기, 미장센을 고려한 대비와 색조를 만들어 내는데 초점을 맞추는 개념입니다. 

 

마지막으로 계조에 대해서도 짧게 이야기해볼게요.

계조는 밝기와 색상이 얼마나 부드럽게 이어지는지, 즉 자세하게 표현되는지를 뜻합니다. 예를 들어 흰색과 검정 사이에는 회색, 빨강과 노랑 사이에는 주황이 있을 텐데 그 사이를 빈틈없이 자연스럽게 이을 수 있을 만큼 표현된다면 이를 '계조가 좋다, 계조가 풍부하다'고 합니다. 계조는 곧 가능성을 뜻합니다. 세밀하고 풍부한 계조를 가질수록 원하는 이미지, 더 창의적인 대비와 색조를 만들기 용이하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높은 다이나믹 레인지를 가진 카메라의 과제는 좋은 계조를 확보하는 것입니다. 저 개인적으로도 DI작업을 할 때마다 느끼는 건데요, 계조가 풍부한 영상은 어떻게 하더라도 좋은 그림이 나올 수밖에 없습니다. 

 

 

 

6. 활용

 

앞으로도 계속 강조하겠지만 절대 장비의 성능, 기계적인 스펙을 맹신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을 가장 먼저 말하고 싶습니다. 높은 해상도와 다이나믹 레인지를 믿고 촬영과 조명 환경을 충분히 고민하지 않으면 처참한 결과를 가져올 수 있습니다. 주광원을 너무 밝게하면 명부의 데이터가 전부손실될 뿐만 아니라, 피사체 또한 그림자가 너무 짙어져 다시는 살릴 수 없는 상태가 됩니다. 촬영할 때는 공들여 찍었는데 열어보니 역광이 너무 심해서 보여야 할 부분들이 어둡거나, 원하지 않는 노이즈가 섞여있는 경우에요. 후보정에서 어떻게 해볼 수 있을 것 같지만 아마 노이즈를 완화시키는 게 최선일 겁니다. 반대로 전반적으로 노출이 너무 부족해서 암부에 데이터가 극단적으로 몰려있는 경우입니다. 이 경우에는 명부와 암부, 중간톤을 적절히 다시 배분해야 하는데 암부쪽으로 너무 뭉쳐있으면 계조를 쪼개더라도 디테일에 한계가 있어요.

 

마지막으로 노출을 높여서 밝게 찍는 경우입니다. 대부분 명부가 날아가지 않는 선에서 노출을 밝게 잡고 모든 부분의 디테일을 살려놓는 거죠. 그리고 나중에 후보정 과정에서 대비를 만들려고 합니다. 명부와 암부가 전부 살아있기 때문에 다이나믹 레인지가 소화할 수 있는 충분한 데이터를 확보한 것처럼 보이지만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오히려 조금 어두워 보이더라도 노출을 암부와 중간톤 사이에 맞추는 것이 양질의 데이터를 얻는데 훨씬 유리합니다. 이는 우리 눈이 밝은 곳보다 어두운 곳에 더 민감하게 반응하는 특성 때문인데, 카메라도 눈의 특성을 고려해서 설계 되었기 때문이예요. 이는 로그(Log) 촬영 기법으로 이어지는데 나중에 더 자세하게 설명해보도록 하겠습니다. 결론은 밝게 촬영해서 대비를 만드는 것보다 비교적 어둡게 촬영해서 대비를 만드는 것이 이상적인 토널레인지를 구성하고 활용하는데 유리하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다이나믹 레인지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았습니다.

좋은 품질의 영상을 얻기위해 기술적으로 신경써야 하는 것들에는 여러가지가 있어요. 높은 해상도와 프레임레이트, 손실이 적은 매개코덱 혹은 RAW 데이터로 저장하는 많은 방법들이 있을 거예요. 정제된 빛을 모아주는 좋은 렌즈를 선택하는 것도 방법이 있겠네요. 하지만 무엇보다 폭넓은 다이나믹 레인지로 다져진 순도높은 계조를 얻는 것이 압도적인 방법이라고 개인적으로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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