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그림을 그리려면 가장 먼저 종이의 크기를 정해야 합니다. 씨앗을 심을 때는 화분의 크기를 정해야 하고요, 이사를 계획할 때는 집의평수를 정해야 합니다. 어떤 일을 하든 상황에 맞는 크기를 정하는 일은 품질과 효율을 모두 챙길 수 있는 아주 중요한 일입니다. 같은 맥락으로 내가 어떤 영상을 만들지 정했다면 상황에 맞는 영상의 크기를 정하는 일을 가장 먼저 해야겠죠?
오늘은 화면의 크기를 결정하는 해상도에 대해 알아보려 합니다. 이전 '화질에 영향을 주는 요소'에서 잠깐 설명을 했지만 현재 통용되는 해상도의 종류, 그리고 이 개념이 어떻게 활용되는지에 대해 더 깊고 자세하게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1. 해상도(Resolution)
우리가 일상 속에서 보는 TV, 모니터, 스마트폰, 아이패드 등의 모든 화면은 작은 점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이는 점을 찍어서 그리는 점묘화를 떠올리면 이해가 쉬울 거예요. 캔버스 위에 수많은 점은 물감으로 찍혀있지만, 화면 속에 수 놓인 점은 아주 작은 전구(컬러필터)로 이루어져 있고, 이를 픽셀이라고 합니다. 이 픽셀이 화면의 가로/세로이 몇 개씩 있는지에 따라 화면의 품질과 선명도를 결정하는데, 이것이 바로 해상도입니다. 그리고 픽셀의 가로/세로의 개수를 곱하면 화면의 총 픽셀 수가 나오는데, 이를 화소라고 해요.
예를 들어 가로 1920개, 세로 1080개 픽셀이 있는 화면의 해상도는 1920x1080으로 표기하고, 총 2073600 화소를 갖는다고 할 수 있습니다.
2. 화면비(Aspect Ratio)
A4용지 비율이 1.41:1(297mm x 210mm)인 것처럼, 다빈치의 황금비율이 1:1.1618인 것처럼, 소맥의 비율이 1:1인 것처럼. 우리가 보는 영상에도 비율이 있습니다. 화면비는 말 그대로 화면의 가로x세로 길이의 비율을 뜻합니다.
대표적으로 HDTV는 1.78:1 (16:9), 영화는 1.85:1 혹은 2.39:1, 최근 넷플릭스는 2:1의 화면비를 채택하고 있습니다. 경우에 따라 활용하기 나름이겠지만 화면이 좁아질수록, 즉 정사각형에 가까워질수록 인물이 잘 보이게 되고 인물의 감정에 집중할 수 있게 됩니다. 반대로 화면이 넓어질수록 광활한 풍경이나 인물 간의 관계, 구도, 미장센을 강조할 수 있게 됩니다.
예를들어 영화 괴물에 등장하는 '괴물'이라는 오브제에 집중할 수 있도록 1.85:1(Flat) 비율을 채택한 사례가 있죠. 더 극적으로 영화 로렌스 애니웨이에서는 1.33:1의 화면비로 인물과 감정을 보이게하고 전달하려는 의도가 보입니다.
반대로 넓은 화면을 이용해 구도와 미장센, 의도를 전달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2.55:1의 화면비로 영화 라라랜드를 꼽을 수 있는데요, 각 인물간의 상황과 관계, 그리고 풍부한 미장센으로 영상미를 극적으로 보여줍니다. 개인적으로 감명 깊게 봤던 영화 컨택트에서도 2.39:1 비율을 사용해서 광활한 대지 속에서 외계 비행물체의 압도적인 거대함을 돋보이게 만들었습니다.
해상도에 따라 달라지는 화면비를 알게 되면,
화면비만으로 연출자가 어떤 의도로 화면의 크기를 정했는지, 더 나아가 내가 만드는 영상에도 '어떤 의도'를 담아낼 수 있습니다.
3. 종류 (Display Resolution)
그럼 이제 현재 사용되고 있는 해상도의 종류에 대해 알아보려고 합니다. 과거에는 표준에 맞춰서 해상도의 규격이 어느 정도 정해져 있었고 종류 자체가 많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기술이 발전하고, 카메라와 모니터의 종류도 많아지면서 해상도 또한 너무나 다양해졌습니다. 따라서 가장 많이 사용되는 표준 규격의 해상도, 그리고 반드시 알아야 하는 것들만 짚고 넘어가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TV, 비디오 디스플레이에 사용되는 해상도입니다.
i. SD: 디지털 시대가 되면서 HD와 구분하기 위해 HD규격보다 저화질의 해상도를 지칭하는 규격입니다. 일반적으로 640x480의 해상도부터 시작해서, 앞으로 나올 NTSC, PAL, XGA 규격들을 통칭하며, 화면비는 1.33:1 (4:3)입니다.
ii. NTSC: 원래 NTSC의 정확한 개념은 아날로그 TV의 컬러 인코딩(변환) 방식을 뜻합니다. 하지만 NTSC라는 규격이 색영역뿐만 아니라 해상도도 같이 포함하고 있으므로 여기에서는 'NTSC 해상도' 개념으로 설명하려 합니다. 2010년대 이전까지 우리나라 방송국에서 송출하기 위해 사용했던 규격이며 해상도는 720x480이고 화면비는 1.33:1 (4:3)입니다. 지금은 전 세계적으로 디지털 방송이 서비스되고 있고 HDTV를 넘어 4k TV까지 보편화되고 있기 때문에 잘 못 느낄 수도 있지만, 예전에 즐겨봤던 무한도전, 1박 2일, 하이킥시리즈만 봐도 4:3으로 방송된 걸 볼 수 있죠.
그다음 WVGA, PAL, SVGA가 있는데, 비슷한 맥락이므로 설명 없이 넘어가겠습니다.
iii. XGA: 과거 IBM에서 발표한 그래픽카드의 표준입니다. 해당 규격이 1024x768 해상도까지 지원이 가능했기 때문에 이 해상도를 XGA라고 부릅니다. 과거에 나왔던 모니터 혹은 빔프로젝터에서 사용되는걸 종종 볼 수 있습니다.
iv. HD 720p: HD는 High Definition의 약자로 지금까지 설명했던 SD보다 뛰어난 해상도를 가지고 있는 화면의 해상도를 뜻합니다. 뒤에 붙은 720은 세로(높이) 픽셀 수를 뜻하며 p는 주사방식 Progress를 뜻합니다. 주사방식에 대해서는 나중에 자세히 설명드리도록 할게요. HD 720p는 다음에 설명할 HD와 구분 짓기 위해 따로 표기 되어 있고 해상도는 1280x720, 화면비는 1.78:1 (16:9) 입니다. 현재 가장 보편화된 HD의 하위 호환으로 이해하면 좋겠습니다.
그 다음 WXGA, SXGA, SXGA+, WSXGA, UXGA 를 지나서(그냥 넘어가도 무방합니다.)
v. HD: 드디어 HD입니다. 현재 디지털 영상의 표준이며, 가장 보편화 되어있는 규격이라 할 수 있습니다. 지금 실생활에서 보는 TV, 모니터, 스마트폰, 아이패드 등 모든 기기뿐 아니라 영상을 송출하는 대부분의 방송국과 플랫폼도 HD를 표준으로 삼고있죠.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영상을 보거나 만들 때 화질을 결정하는 기준이 됩니다. 즉, HD보다 해상도가 낮으면 저화질, HD보다 높으면 고화질로 취급해요. 가끔 HD720p와 구분짓기 위해 Full HD로 부르기도 하지만, 저는 HD로 부르도록 하겠습니다. HD의 해상도는 1920x1080, 화면비는 1.78:1 (16:9) 입니다.
그 다음 WUXGA, QXGA, UWHD를 지나서(마찬가지로 그냥 넘어가도 무방합니다.)
vi. QHD 2.5k: QHD는 HD720p 화면 4개를 합친 크기를 말하며, 해상도는 2560x1440 입니다. 2010년 Dell의 울트라샤프(U2711) 모니터가 출시되면서 가장 처음 규격화 되었고, HD와 앞으로 설명할 UHD의 중간 레벨에 있는 해상도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그 다음 WQXGA, QSXGA, UWQHD를 지나서,
vii. UHD 4k: Ultra High Definition의 약자로, HD화면 4개를 합친 크기를 말합니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4K TV, 4K 모니터가 이에 해당하며 3840x2160 해상도를 가집니다. 여기서부터는 화질이 눈에 띄게 좋아지며, 더 낮은 해상도와 비교했을 때 훨씬 더 선명한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현재 표준에 맞춰 작업 환경을 만들 수 있고, UHD로 제작된 컨텐츠가 방영되고 있으므로 이제는 상용화가 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 다음 4k보다 더 큰 해상도를 지원하는 카메라, 모니터가 생겨나면서 5k, 6k 규격도 생겨나게 됩니다.
viii. UHD 8k: UHD 8k는 UHD 4k화면 4개를 합친 크기로, 7680x4320의 해상도를 가집니다. 4k보다 훨씬 많은 화소수로 훨씬 더 선명한 화면을 볼 수 있겠지만, 데이터 자체가 워낙 무겁기 때문에 왠만한 하드웨어로는 8k 원본 해상도를 정속으로 재생하기 어렵습니다. 현재 8k를 지원하는 카메라, TV, 모니터가 나오고 있지만 국제 표준(ITU-R 권고)에 맞춰서 소화하는 진정한 의미의 8k는 아니기 때문에 상용화가 되려면 시간이 더 필요해 보입니다.
지금까지 TV, 비디오 디스플레이에 사용되는 해상도를 알아보았습니다.
다음은 영화 규격에 사용되는 해상도에 대해 설명해 보겠습니다.
ix. Flat: 영화에서 사용하는 가장 대표적인 규격 중 하나입니다. 영화에서 Flat이라고 하면 특정 해상도가 아닌 화면비를 뜻합니다. Flat의 화면비는 1.85:1이며, 비디오 규격의 HD(1.78:1) 보다 조금 더 넓습니다. Flat은 2개의 해상도가 있는데, Flat 2k는 1998x1080, Flat 4k는 3996x2160의 해상도를 가집니다. 우리나라는 아직 4k 극장이 많이 없기 때문에, 만약 영화관에 가서 보는 영화가 Flat이라면, 거의 대부분 Flat 2k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x.Scope: 일반적으로 영화라고 했을 때 크고 와이드한 화면을 떠올리게 되는데, 아마 대부분 Scope 화면비를 채택한 영화일 겁니다. Scope는 2.39:1의 넓은 화면비로 미장센과 영상미를 극대화 할 수 있고, 영화를 더 영화적으로 만들어주는 역할을 하기도 합니다. 해상도는 Scope 2k일 때 2048x858, Scope 4k일 때 4096x1716입니다.
xi.DCI Native: DCI(Digital Cinema Initiatives)는 디지털 영화를 더 좋은 품질로 균일하게 제작/관리하기 위해 설립된 회사입니다. 앞서 설명했던 Flat과 Scope 모두 DCI에서 정한 사양이지만, 지금 설명드리는 규격과 구분하기 위해 DCI Native라고 했습니다. 보통 이 규격을 DCI 2k, DCI 4k로 부르는데 같은 맥락으로 DCI 2k는 2048x1080, DCI 4k는 4096x2160의 해상도를 가지며, 화면비는 1.90:1입니다. 더 나아가서 DCI 포맷이 8k가 되면 8192x4320의 해상도가 되는데, 이를 8k Full Format이라고 합니다.
지금까지 설명한 규격보다 더 많은 종류의 해상도가 있지만,
NTSC, HD, UHD 4k, UHD 8k, Flat, Scope, DCI
이것만 확실히 알아두면 앞으로 영상을 공부하고 제작하는데 충분합니다.
4. 해상도는 어떻게 활용해야 할까? (Shoot / Edit / Export)
이제 해상도의 종류를 알았고, 내가 만들 영상의 해상도도 결정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럼 해상도의 품질을 유지하면서 완성하려면 어떻게 해야할까요?
만약 내가 4k로 영상을 업로드 하거나 배포하고 싶다면 당연히
4k(3840x2160)를 지원하는 카메라로 세팅해서 찍고
4k(3840x2160) 소스만을 이용해서 타임라인을 4k(3840x2160) 만들어 편집하고
4k(3840x2160)로 마스터링 하는 것이 가장 기본적이고, 일반적인 방법입니다.
마찬가지로 영상을 시청할 때에도 4k로 촬영되고 제작된 영상이라면 4k TV 혹은 모니터에서 봐야 가장 좋은 품질로 볼 수 있어요. 물론 낮은 해상도를 높은 해상도로 바꿔주는 업스케일링(Upscaling) 기술이 있지만, 원본 해상도처럼 정제된 영상을 얻을 수는 없습니다.
반대로 더 높은 크기의 해상도로 촬영해서 낮은 해상도로 출력하는 경우는 어떨까요?
최근에 나오는 카메라는 기본적으로 모두 4k 해상도를 지원하고, 하이엔드 시네카메라 RED 카메라는 8k를 지원합니다. 현재 4k가 상용화가 되었지만 여전히 HD를 최종 포맷으로 제작되는 광고나 드라마가 많습니다. 하지만 현장에서는 대부분 4k 혹은 8k를 기본으로 촬영을 합니다. 이렇게 하는 데에는 해상도와 관련해서는 2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먼저 높은 해상도(4k 혹은 8k)로 촬영해서 낮은 해상도(HD)로 사이즈를 줄여서 출력하는 경우 HD로 촬영해서 출력하는 것보다 더 좋은 품질의 영상을 얻을 수 있습니다. 비유하자면 더 상품성이 있는 사과를 수확하기 위해 더 많은 사과나무를 심는 것과 같습니다. 혹시나 실수로 나무 몇그루가 죽거나, 태풍이 불더라도 비교적 안정적으로 사과를 확보할 수 있으니까요. 이처럼 더 많은 픽셀을 미리 확보해두는 겁니다. 4k사이즈를 HD로 줄이면서 약간이지만 더 좋은 품질과 선예도를 기대해볼 수 있는 거죠.
두번째로 편집하는 과정에서 영상을 확대할 때 이득이 있습니다. 편집에서 영상을 확대하는 것을 디지털 줌(Digital Zoom)이라고 하는데, 디지털 이미지는 확대하면 픽셀이 드러나면서 화면이 깨지게 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내가 작업하고 있는 해상도보다 더 큰 해상도의 영상으로 확대하면 깨지는 걸 방지할 수 있습니다. 예를들어 4k는 HD화면 4개를 합친 것과 같습니다. 따라서 이론상 HD로 작업할 경우 4k 영상은 2배 확대해도 괜찮습니다. 하지만 이론상 깨지지 않는다고 되어있지만 무작정 해상도만 믿고 확대하면 안됩니다. 화질에 영향을 주는 요소는 해상도만 있는 게 아니니까요.
5. 화면이 크면 무조건 좋을까? (Plot-Twist)
최근 8k 해상도를 지원하는 TV와 모니터가 출시되고 있습니다. 마트에 전시된 TV는 눈보다 더 선명한 화면을 재생하고 있을거예요. 압도적인 화질에 매료되어서 큰맘먹고 구매를 했고 집으로 가져왔습니다. 들뜬 마음으로 TV를 켜서 보는데 어떨까요? 마트에서 봤던 그때 그 느낌이 절대로 나지 않을 겁니다. 왠지모르게 흐리거나 질감만 날카롭게 보일 거예요. 왜냐하면 TV는 8k를 지원하는데 아직 8k로 제작되어 송출되는 컨텐츠가 없기 때문입니다. 내 발사이즈는 230인데 그저 아주 크고 멋있는 280짜리 신발을 신는 것과 같아요.
일반적으로 해상도가 크면 품질이 더 좋고 선명합니다. 하지만 무조건 해상도만 크다고 다 좋을까요? 제 경험으로는 하이엔드 카메라를 8k로 촬영된 영상이 HD보다 품질이 떨어지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아무리 좋은 카메라로 찍더라도 촬영/조명 환경이 그 무엇보다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더불어 내가 다루는 영상의 기술적인 부분까지 모두 이해하고 신경써야 양질의 데이터를 얻을 수 있고 활용할 수 있습니다. 예를들어 HD와 4k 해상도는 영상 포맷에 따라 관용도, 비트뎁스, 감마특성, 색공간 등 정말 많은 부분에서 차이가 나고 그에따라 들어가는 리소스도 달라집니다. 혼자 먹으려고 끓인 부대찌개를 4인분 냄비에 넣고 끓였을 때 물만 넣는다고 완성되지 않는 것처럼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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